어느 날 필자의 아버지는 엔즈시포, 에릭 게레트, 플리쳐, 얀 플레안스 같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회상했다. 82년도 월드컵 개막전에서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격파했고, 86년도 월드컵에서 4강까지 오른 벨기에는 그 당시 센세이셔널한 축구를 선보여 ‘붉은악마’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막강했던 벨기에 축구의 시계가 멈추기 시작했다.
이 시계는 2002년을 마지막으로 멈추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마지막으로, 유럽선수권대회(EURO)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공동개최됨으로써 개최국 자격으로 참가한 2000년도를 제외하면 1984년 프랑스 매치 이후로 국제무대에서 사라졌다. 이렇듯 벨기에의 시계가 멈춘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세대교체의 실패다. 1980년대 벨기에 축구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엔조시포가 1998년 월드컵에서도 뛸 만큼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비록 (벨기에 98년대 어린선수) 같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아무리 최고의 팀이었다 해도 세대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한 순간에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는 자국리그의 침체이다. 자국리그가 활성화되어야 그 나라의 대표팀도 활성화되는 것을 모두가 아는 상식이다. 벨기에의 명문인 안더레흐트는 (자국리그우승횟수)에 빛나며 벨기에의 대표클럽으로 뽑힌다. 그러나 안더레흐트를 필두로 한 자국리그의 침체가 2000년도부터 계속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리그의 침체가 가속화되자 네덜란드 리그의 합병 제안을 받기도 한다. 마치 SPL의 셀덕과 레인져스가 EPL의 합병제안을 받았었다는 루머가 돌았던 것처럼, 벨기에리그에게 매우 치욕스러웠던 일로 꼽힌다.
세 번째는 계속되는 시계추의 고장이다. 시계를 이끌어 가듯이 팀에서 꼭 필요한 것이 리더십인데, 최근 4년동안 4명의 감독이 바뀌면서 팀 내의 분위기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 중엔 우리나라 대표팀을 맏았었던 아드보카트 감독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이런 문제로 고장나 있었던 벨기에 축구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뇰렛, 쿠르투와 베르트헨, 콩피시, 아메르 형제, 베즈디엘런 악셀비헤 뎅벨게 데브루인 벤테게 미길라스 펠라이니 등 몸값이 세계 3위에 이르는 엄청난 팀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첫 번째는 문화적 다양성의 인정이다. 아까 언급했던 선수중에 아자르 형제와 멜리아니는 모로코 난민 2세이고 벤테케, 루카쿠, 콤파니, 뎀벨레는 콩고 난민 2세, 악셀 비체는 서인도 제3의 마르티크섬 출신이며 음보에 형제는 자이레(콩고민주공화국). 이렇게 이민자들이 많은 이유는 20세기에 생겼던 아프리카의 식민지들로부터 온 난민들을 대거 수용하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가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함으로써 이러한 축구의 발전이 일어난 것은 눈여겨 봐야 할 점이다.
두 번째는 적절한 감독의 교체이다.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을 가진 팀은 내부에 균열이 생기기 쉽다. 이런 팀은 나이가 비교적 젊고 소통을 중시하는 감독이 필요한데 빌모즈가 바로 그런 감독이다. 빌모즈는 80년데 벨기에의 부흥을 이끌었던 선수였다. 그가 이끄는 벨기에는 유럽지역예선 A조 1위로 올라있고, 월드컵에서 다시 4강 이상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어 영광의 재현을 다시 눈 앞에 두고 있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가 성격을 결정짓는다고? 바넘효과 @차지훈 (0) | 2013.07.17 |
---|---|
힐링을 위한 톨게이트-여유가 있는 기다림 @이준형 (0) | 2013.07.17 |
중국 슈퍼리그, 진짜 슈퍼리그가 될 수 있을까 @백재민 (0) | 2013.07.16 |
2시간의 감성을 읽다 @정여진 (0) | 2013.07.16 |
만년 수험생, 한국인의 우선순위 @정여진 (0) | 2013.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