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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피가 성격을 결정짓는다고? 바넘효과 @차지훈

(네이버 인기 웹툰 만화, <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혈액형 심리 테스트' 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A형은 소심쟁이, B형은 쿨남쿨녀, O형은 낙천주의자, AB은 천재 혹은 돌 + I'

듣고보니 그럴싸하다. 주위를 둘러봐도, 내 모습을 봐도 대부분 들어맞는 말이다.
필자는 B형이라, '쿨남쿨녀' 라는 소리를 들은 뒤로는 괜시리 쿨해지고, 다른 사람의 부탁도 마치 내 일인 양 앞장서서 도와주고는 했다.
게다가 필자는 어려서부터 심리테스트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테스트란 테스트는 보이는 대로 했다.
혈액형, 별자리, 좋아하는 과일부터 시작해서 손가락의 생김새를 물어보고, 눈을 1분에 얼마나 깜빡이는 지를 묻지 않나, 있지도 않은 여자친구 이름을 물어보더라.
그렇게 15년, 4년 전까지 내 테스트 결과를 철썩같이 믿어왔다.

(태어난 날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면 출산일도 조정해야 되나?)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나서 예전에 했던 심리 테스트들을 다시 찾아 해 보기 시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별자리 심리테스트였는데, 이번엔 내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별자리의 결과도 같이 보기로 했다. 재밌는 결과가 나왔다. 여기 그 테스트를 짧게 소개한다.

<별자리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게자리(6/22~7/22) : 좋아하는 것 - 자신의 엄마를 좋게 보는 것, 진귀한 요리
                             싫어하는 것 - 자신의 가정에 대한 비판, 대화에 참여하라는 압박

사자자리(7/23~8/22) : 좋아하는 것 - 쾌락과 즐거움, 예쁘게 포장된 선물, 최고의 품질
                                싫어하는 것 - 신체적 상처, 무시당하는 것, 비웃음 당하는 것
천칭자리(9/24~10/22) : 좋아하는 것 - 즐거운 분위기, 감탄의 대상이 되기
                                 싫어하는 것 - 혼란스러운 상황, 복장이 단정하지 못한 것

필자의 별자리인 사자자리부터 보도록 하자.
쾌락과 즐거움?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는가?
예쁘게 포장된 선물? 포장지는 살살 뜯어서 전부 보관하고 있다.
최고의 품질? 당연히 좋아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별자리가 진짜 성격이랑 관련이 있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별자리의 결과까지 모두 두고 보자.

엄마를 욕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 진귀한 요리나 즐거운 분위기를 마다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쾌락과 즐거움, 감탄의 대상이 되는 것, 최고의 품질 모두 모든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다.

싫어하는 것도 똑같은 결과다.
집안을 욕하는 것, 압박, 상처를 누가 받고 싶겠는가. 모두 싫어할 법한 것들만 죽 나열해 놓고서 별자리에 순서대로 끼워넣은 것으로 밖에는 안 보인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런 사기 행각(?) 을 알 수 있는데, 사람들은 왜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를까.

(바넘과 전국의 모든 심리테스트 추종자들에게 빅엿을 날려주신 버트럼 포러)

그렇다고 자책하지는 말자. 우리만 낚인 게 아니라 몇 백 년 전 사람들도 그랬었다.
시간은 19세기 말로 돌아간다. 당대 최고의 사업가이자 쇼맨이었던 '바넘'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서커스에서 관객을 앞으로 불러 성격을 알아맞추는 마술로 굉장히 유명했다. 모든 사람이 그가 속임수를 쓴다고 비판하며 스스로 자원해서 자신의 성격을 알아맞추라고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바넘은 모든 성격을 맞췄다. 결국 이 마술의 비밀은 100년이 지난 뒤에야 밝혀졌다.
'버트럼 포러' 라는 심리학자는 자신의 수업을 들으러 온 학생들에게 종이 한 장씩을 나누어주며 자신의 성격과 일치하는 지를 물었다.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은 내용이 써진 종이를 나눠주었는데, 결과의 평균은 5점 만점에 4.2점이었다. 100명이 넘는 학생들의 성격이 모두 비슷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만 있으면 독심술 마스터!)


이것이 그 종이의 내용이다. 한 번 테스트 해 보자. 자신의 성격과 일치하는가? 아마 포러의 학생들처럼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수긍할 수 밖에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이 문항들은 애초에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작성한 것이다. 버트럼 포러가 바넘이 마술에 사용했던 대사들을 종합하고 분석하여 정리한 문항들인 것이다.

이 문항들을 냉철하게 분석해 보자.

첫 번째 문항을 보면 '때로는 외향적이고, ~ 어떤 때는 반대로 내향적이고 ~' 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은 당연히 편안하고 익숙한 분위기, 이를테면 집이나 학교 교실, 친구들과 있는 장소에서는 당연히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낯선 장소에 나홀로 있게 되면 말이 없어지고 조심스러워지는 건 지극히 정상인 일이다.

두 번째 문항의 '적당한 정도의 변화와 다양성을 추구하고~' 에서, 이 '적당히' 라는 말에 집중하기 바란다.
'적당히' 가 정확히 어느 정도를 뜻하는 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사람은 누구나 변화와 다양성을 추구한다. 아무리 보수적인 사람이라도 말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적당히' 의 뜻이 축소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확대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 문장은 애매하다.

마지막 문항도 마찬가지이다. '조금' 이라던가, '전반적으로', '잘' 등의 애매한 표현들이 널려 있다.
약점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또 그것을 극복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일반적인 말이다.

이렇게 너무도 당연해서 누구에게나 잘 들어맞는데다가, 애매한 표현들을 사용해서 사람마다 다양하게 각자의 생각대로 해석이 가능한 말들, 바넘이 사람들의 성격을 알아맞출 때 썼던 이 속임수 문항들을 통틀어 <바넘 문항>이라고 하고, 그러한 특성들을 <바넘 효과> 라 한다.

(당신은 몇 번째 물고기입니까)

그렇다. 당신은 낚여왔다. 인터넷에 퍼져 있는 99%의 심리테스트는 모두 이러한 바넘 효과들로 잘 짜여진 사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애초에 혈액형 심리테스트는 2차 세계대전 전후로 독일에서 유대인들을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낸 폐해 중 하나다. 그걸 일본에서 줏어다가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 잡지를 통해 흘려보낸 게 지금까지 오고 있는 것이다.
혈액 정보 사이트 '블러드북닷컴' 에서 통계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Blackfoot 원주민은 A형이 인구의 82%, 브라질 Bororo 원주민의 경우 O형이 무려 100% 다.
혈액형 심리테스트 결과를 대입하면, Blackfoot 원주민은 서로 소심해서 말도 못하고, Bororo 원주민들은 모든 사람들이 웃고 다녀야 한다.

아직도 가짜 심리테스트를 믿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