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년이 나무를 기르고 있었다. 나무가 소년의 사랑을 받으며 쑥쑥 자라던 중 겨울이 찾아왔다.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겨울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내려 발목이 푹 빠질 정도로 길이 덮였고 소년이 애지중지 기르던 나무도 눈에 덮여버렸다. 소년은 나무를 걱정했다.
‘이러다가 얼어죽으면 어떡하지?’
며칠동안 소년은 안절부절 나무에 쌓인 눈이 녹기만을 기다렸다. 나무를 덮은 눈은 점점 더 굳게 자리를 굳혀가는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 소년은 집에서 따뜻하게 데운 물을 주전자에 담아와 자신이 아끼던 나무에 뿌려주기 시작했다. 나무에 쌓인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소년은 안심했다. 그 날만큼은 소년은 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음날, 소년은 들뜬 마음으로 나무를 찾아가 보았다. 눈이 모두 녹아있을 줄 알았던 소년의 기대와 달리 나무는 이제 눈이 아닌 얼음으로 덮여있었다. 며칠 후, 일기예보와 달리 날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고 나무 주변의 눈들은 모두 녹아 땅에 스며들었다. 주변에 겨울의 흔적을 간직한 것이라고는 소년의 나무밖에 없었다.
나는 요즘 되는 일이 없다. 나름 원대한 꿈을 품고 시작한 이런저런 일들이 잘 풀리지 않아 울적한 마음을 품고 지내던 중, 나의 이런 모습을 본 친구 오군이 ‘소년과 나무’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며 이런 말을 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일단 조용히 기다려봐. 너도 모르는 사이에 봄이 와서 눈을 녹여줄 수도 있으니까.”
그의 말을 듣고 내가 어설픈 미봉책으로 잘 풀리지 않던 일들을 어떻게든 당장 해결해보려 했던 모습들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초보, 그 이하의 모습들이었다. 나는 영락없이 눈이 덮인 나무에 데운 물을 부어대는 소년의 모습을 닮았던 것이다.
내가 하던 일들이 안되다보니 주변을 보면 모두가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것만 같고 그들은 언제나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 나만 이렇게 한심할까’
스스로를 자책하며 하루라도 빨리 내가 하는 일들을 보란 듯이 성공시켜 주변의 존경 섞인 시샘을 받고 싶었다. 서둘러야 한다는 마음가짐 때문이었는지 그나마 미봉책에 불과했던 대안들조차 대부분이 실수투성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무언가에 쫒기듯 프리랜서를 가장한 백수 상태를 벗어나려했던 나의 행동은 소년이 나무에게 뿌리던 따뜻한 물과도 같아서 나를 안심시키며 훨씬 더 견고한 얼음 속에 가두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일에는 하기에 적절한 때와 시기가 있다. 그 것을 깨부수고 해낸다면 진정한 초인의 칭호를 얻기에 충분하지만 그런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일이 잘 되느니 안되느니 한탄하며 이 글을 펼쳐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를 하기에 적절한 때는 매년 번갈아가며 돌아오는 사계절과 같다고 생각한다. 주기적으로 돌아가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때로는 예상보다 빠르게, 혹은 늦게 찾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봄이 오면 겨울동안 쌓였던 질퍽한 눈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언제 그 곳에 있었냐는 듯이 사라져버린다. 앞서 말한 이야기의 소년처럼 눈 덮인 나무에 따뜻한 물을 붓는 것과 같은 어설픈 대책은 오히려 봄이라는 ‘때’가 와도 일을 더 풀리지 않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하는 일마다 안되고 밤마다 자신의 내일을 걱정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일단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해보기로 했다. 눈을 감은채 그동안 듣지 못했던 주변의 소리를 하나하나 들어보는 것이다. 눈 덮인 나무에 부으려 준비해놓았던 따뜻한 물을 컵에 옮겨담아 홀짝거리며 몸을 녹이고 봄이 오기를 기다려보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밤새 괴롭히던 자괴감이 눈 녹듯 사라지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서둘러 해결하고 싶어했던 복잡한 일들과 생각들, 얼마 전 싸워 서먹해진 친구, 그리고 나를 끊임없이 짓눌렀던 자괴감들 모두 눈 속에 담아두고 봄이 오는 소리를 기다려보니 위태롭게 흔들리던 마음이 잔잔해져갔다. 하려는 일이 잘 안될 때,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당장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허둥지둥 서두르는 태도보다 잠시 여유를 가지고 자신이 해왔던 행동과 모습들을 천천히 되새겨보며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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