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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멘붕 금지 백혈구, 방어기제 上 @차지훈

(오스모시스 짱짱굿맨)



몸 속에 병균이 침입하면 백혈구가 곧바로 나와 병균을 물리친다.
종이에 베이거나 계단에서 굴러 상처가 났을 때, 이 고마운 백혈구가 외부의 병균과 싸워주는 덕에 우리는 가벼운 상처쯤에는 귀찮게 병원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
백혈구는 우리 몸 속에 존재하는 '보디가드' 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멘탈가드' 는 없을까?


현대인의 삶은 말 그대로 처참, 그 자체이다.
사회에서의 압박, 가정에서의 압박, 직장에서의 압박, 자기 자신에 대한 압박.
이렇게나 불안과 우울, 스트레스, 공포 등이 많은 사회에서 상담치료사가 유망직이 되는 건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정신적인 압박 속에서 우리가 그래도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 것은 멘탈가드, 바로 <방어기제> 덕분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방어기제를,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에서 자아가 유지하던 힘의 균형이 깨어졌을 때 발생하는 불안을 처리하기 위한 전략" 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이 내용까지 다루면 필자가 밤을 새야하므로 넘어가도록 하자. 궁금하면 쪽지 ㄱㄱ
쉽게 말해서, '마음의 백혈구' 정도라도 이해하면 될 듯 하다.
불안, 스트레스 등의 병균이 침입하면, 방어기제가 출동하여 이들을 잡아 물리친다.

방어기제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전략으로 싸우는데,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 중 대표적인 것들을 소개한다.


합리화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배고픈 여우가 울타리 너머의 포도를 먹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지만 결국 먹지 못하게 되자, '저 포도는 분명 신 포도였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포도를 포기한다는 얘기이다.

(바로 앞에 있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안 그래도 배고파서 짜증나는데, 눈 앞에 음식이 떡 하니 있는데도 먹지를 못하니 여우는 돌아버릴 지경이다.
이 때 우리의 방어 기제는 <합리화> 작전에 돌입한다.
실패, 좌절 등이 찾아왔을 때, 상황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현실을 왜곡한다.
그리고 실패하게 된 그럴 싸한 이유를 만들어 스스로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어 기제이다.

퇴행

동생이 있는 형 또는 누나라면 공감이 갈 법한 얘기이다.
동생이 있기 전까지는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해오던 나인데, 동생이 태어나고 나에게로의 모든 사랑이 동생에게로 넘어가 버린 기분이 든다.


(응애.)

방어기제는 <퇴행> 명령을 내린다.
동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자신에게로 오게 하기 위해, 동생처럼 어린 아이로 돌아간 듯한 행동을 보인다.
응애 하고 운다던가, 엄마의 젖을 다시 찾는다던가 하는 퇴행적 행동을 보인다.

꼭 동생이 생긴 형/누나 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주변 여직원을 엄마로 보고 달려든다면 조금 위험하다.
어른에게 있어서 퇴행이란, 정신적 스트레스가 육체적으로 퍼져 몸져눕게 되고,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얻게 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잘했는데 팀이 못해서ㅡㅡ)


투사

<투사>란, 불쾌한 감정, 스트레스 등이 왔을 때, 그 원인을 외부, 즉 다른 사람에게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현실을 부정하며, 상대방에게 원흉의 책임을 떠넘김으로써 그로 인한 심적 부담감과 압박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자신이 져야 할 책임과 불쾌함이 100이었다면, 투사로 인해 10으로 줄어들게 된다.

롤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예시는 없다.

한타가 끝나갈 무렵 미니언을 먹고 있다가 혜성처럼 등장한 베인.
상대팀은 4명이 살아있고 우리팀은 베인과 툭 치면 쓰러질 듯한 소나만이 살아있는 상황.
그리고 베인의 화려한 구르기.
그리고 베인의 회색 화면.
베인 왈, '아 소나님 뭐함ㅡ 서폿이면 원딜 지켜야져ㅡㅡ 다 딸 수 있었는데ㅡㅡ'
니 목부터 따주마.

어쩌면 우리 주변의 트롤러들은 심적 부담을 떠앉고 있는 불쌍한 사람일 지도 모른다.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라도 건네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