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민형. 상춘고등학교 3학년 8반이다.
소심한 성격 탓에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없이 지내왔다.
가끔 가다 말 걸어주는 아이는 있어도, 그것으로 끝. 나에게 있어서 대화라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도 이젠 친구가 생겼다.
조금 과격하긴 하지만, 매일 같이 대화를 하고 장난도 쳐 준다.
사람들은 내 친구를 일진, 날라리, 혹은 양아치 라고 부른다. 별명도 참 많은 내 친구.
사람들은 친구와 같이 있는 내 모습을 질투하나 보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걸 보면.
[출처] <스톡홀름 증후군> 빵셔틀에게 희망을|작성자 엘카운트
내 친구는 나를 시도때도 없이 부른다. 그렇게 내 얼굴이 보고 싶은가?
자기 주변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한다. 내가 옆에 있는게 그렇게 좋나?
내 친구는 매 쉬는 시간마다 나에게 용돈을 쥐어준다. 돈도 많은 내 친구.
1000원을 주고 빵 5개를 사 오라 한다. 벌써부터 흥정을 가르쳐 주는 미래에 도움되는 친구.
부족하면 내 돈으로 메꾸라는 친구. 내가 이따 PC방 갈 걸 어떻게 알고, 일탈을 막아주는 내 친구.
5분만에 매점까지 뛰어갔다 오란다. 다이어트 중인걸 어떻게 알고, 참 고마운 친구.
반 아이들은 날 보고 빵셔틀이라고 한다. 짜식들, 부러우면 부럽다 할 것이지.
근데 난 스타 안 하는데?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날 부르셨다.
학교폭력 뭐시기로 상담해야 한다는데, 학교폭력? 그게 나랑 뭔 관련이 있는거지? 난 행복한데?
선생님이 어떻게 된 일인지 천천히 말해보라 하신다.
도대체 뭘 얘기하라는 거지?
선생님은 다 알고 있다면서, 내 하나뿐인 친구를 모욕하기 시작했다.
평소 태도는 어떻고, 반 친구들을 어떻게 괴롭혀 왔으며, 그 중 유독 학교폭력에 시달린 학생이 다름 아닌
나라는 것이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선생님한테 큰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그 친구가 나한테 얼마나 따스하게 대해줬는데...
사회 나가서 맞고 다니지 말라고 쉬는 시간 수업 시간 가리지 않고 조금씩 때려주고,
민첩해지라고 판치기할 때 앞문에서 망보게 해주고,
인내심을 기르라고 빵 사왔을 때 내 몫은 주지 않고,
이렇게 상냥한 친군데... 하나뿐인 친군데... 감히 어떻게 욕을........ 근데 왜 눈물이 나지?...
그랬구나. 민형이는 소위 말하는 '빵셔틀' 이었던 것이구나.
그렇다고 빵셔틀이라고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변의 전반적인 시선으로 볼 때 불쌍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글 속 민형이는 자신이 셔틀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일진' 을 옹호하고,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우리나라도 아닌 유럽, 무려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은행.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은행 강도가 들이닥친다. 하지만 은행 직원의 발빠른 손놀림(?) 으로 경찰 신고 완료.
강도와 경찰이 대치 중인 상태에서, 강도들은 경찰이 물러날 때까지 인질들을 붙잡고 있겠다고 경찰들을 협박한다.
그렇게 인질과 강도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6일이 흐르고, 경찰은 특공대를 투입하여 거의 일주일 동안이나 무장 강도들에게 붙잡혀 있던 인질들을 구출하고 강도들을 체포한다.
그런데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어야 할 인질들의 표정은 예상과 달리 너무나도 평온한 표정. 오히려 경찰의 지시를 귀찮아하는 느낌이 든다.
인질들의 진술은 더욱 놀라웠다.
6일 동안이나 자신들을 붙잡고 있던 강도들을 옹호하는 건 기본, 나아가 붙잡힌 강도들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 인질들도 있었다.
같이 은행에 갇혀 있는 동안, 자신들도 모르는 새에 강도들에게 동화되어 버린 것이다.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는 이 사건처럼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그 위협을 가하는 '공격자' 와 자신을 '동일시' 하는 현상을 <스톡홀름 증후군> 이라 칭하였다.
스톡홀름 증후군이 일어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공격자가 자신을 해치지 않았다는 고마움에서 공격자를 도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톡홀름 증후군, 동일시 현상은 인질이 풀려나기 전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이러하다. 공격자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공격자가 자신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권한을 얻고 싶어하는 무의식적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스톡홀름의 상황으로 다시 설명하자면, 무장을 한 강도들이 인질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강도들과 같은 높은 위치에 올라가기 위한 소망이 스톡홀름 증후군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군에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 인질들은 자신들에게 살해 위협을 가하는 나치군들에게 동화되었다. 같은 인질들을 억압하고, 나치군들에게 협조했던 것이다.
아직도 스톡홀름 증후군이 단순한 심리 용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글 첫머리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길 바란다.
강도와 인질은 스웨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톡홀름 증후군의 정의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자.
생명이 위협받는 등의 불안한 상황에서 공격자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그들에게 동조하는 비이성적 증상
어째서 학교에 '공격자' 가, 또 '불안한 상황'이 있어야 하는가?
스톡홀름 증후군은 그냥 먼 유럽의 스웨덴에서 일어난 일로 남았으면 한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안타깝게 발생하는 일이 아니었으면 한다.
먼 미래에 어떤 심리학자가 이 증후군을 '빵셔틀 증후군' 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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