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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수칠 때 떠나라, 한도초과 현상 @차지훈

(제일 약한 금연광고. 쎈걸 원하면 구글에 '금연'을 쳐 보길. 대신 밥 먹으면서 보지는 말 것.)



필자가 어렸을 적에 뉴스에서 외국의 금연 광고에 대한 보도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금연 광고가 너무 혐오스러워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다는 내용이었다.
내용인 즉슨, 사람들이 담배를 피울 때마다 담배끝이 타들어감과 동시에 흰색의 걸쭉한 액체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여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담배에 대해 혐오감을 갖게 하는 광고였다.
그 때 그 장면을 보았을 당시의 어린 필자는 패닉에 빠졌었다.
구더기를 연상시키는 그 하얀 액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그 광고를 다시 찾아보기 위해 구글 이미지 검색에 '금연 광고' 를 검색했다.
아무런 필터링 없이 혐오스러운 이미지들이 터져 나왔다.
차마 이 블로그에 올리지는 못 하겠고, 정 궁금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검색해 보길 바란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 많은 금연 광고 중에서 혐오스럽지 않거나 불쾌감을 주지 않는 광고는 눈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좋게좋게 말하면 한 귀로 흘려듣는다고, 자극적인 인상을 심어줬을 때 그 내용을 더 잘 기억한다는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고 응용한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담배를 입에 물면 자괴감이 들 법한 광고들이 가득한데도 왜 여전히 거리는 담배 연기로 자욱할까?
담배의 중독성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톰 소여의 모험' 을 쓴 작가 마크 트웨인에 관한 일화가 있다.

주말마다 교회에 나가 마음을 정화하는 마크 트웨인.
하루는 목사의 설교에 감명받아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의 헌금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40분이 흘렀다. 이 쯤이면 설교가 끝날 기미가 보여야 되는데, 기승전결의 승도 안 온 느낌이다.
마크 트웨인은 조금만 있으면 끝나겠지 싶어 설교가 끝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로부터 30분이 흘렀다.
주변을 둘러보니 설교를 자장가 삼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곤히 자고 있다.
지겨운 목사의 설교를 듣느니 어서 빨리 꿈 속에서 주님을 직접 만나뵙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그는 화가 나서 원래 헌금하기로 했던 금액에 절반만 헌금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10분이 흘렀다.
지폐는 지갑 속에 집어넣은 지 오래고, 주머니 속 1센트마저 늙어빠진 목사에게 주느니 주님의 뜻으로 불쌍한 거지에게 자선하기로 했다.

총 3시간의 지루한 연설이 끝나고 헌금통이 지나다니며 돈을 요구했다.
마크 트웨인은 돈을 넣는 척을 하며 헌금통에 있던 2달러를 훔쳤다.

설교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감명 받았던 마크 트웨인은 왜 설교가 끝나고 돈을 훔쳤던 것일까?


혐오와 불쾌감으로 사람들을 설득했던 금연 광고도, 너무도 완벽한 설교도 그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담배를 입에 물게 하고, 마크 트웨인이 헌금함에서 2달러를 훔치게 한 이유는 그 '강도' 에 있다.

물이 차면 넘친다.

마크 트웨인이 처음 30여 분간 목사의 설교를 들었을 때 감동했지만, 그것이 몇 시간 동안 계속되자 오히려 그는 감명깊은 설교에 반감을 드러냈다.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금연 광고를 처음 보았을 때 사람들은 담배를 쳐다보기조차 싫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자극적인 금연 광고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점을 알게 되었고, 모든 금연 광고를 자극적이고 혐오스럽게 만들어 냈다.
이제는 오히려 평범한 금연 광고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아니, 혐오 광고가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한 광고가  되었다고 할까.

자극이 지나치게 많거나 강렬하고, 혹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 원래 의도했던 목적과 반대되게 반감을 드러내는 것 <한도초과 현상> 이라고 한다.

트웨인은 지나치게 오랜 시간 지속된 자극, 즉 설교를 듣고 짜증을 냈고,
사람들은 여기저기 봇물 터지듯 나오는 혐오 광고들을 보고 이제 금연에 대한 아무런 자극을 받지 못한다.
말그대로 자극의 한도를 초과한 것이다.

한도초과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학교에서 항상 인상을 쓰고 다니시는 엄한 선생님이 혼내는 것은 무섭다.
하지만 평소에 서글서글하시고 학생들과도 친하게 지내시는 선생님이 정색 한 번 하시는 건 더 무섭다.
여러 번의 지속적인 자극보다 한 번의 따끔한 자극이 훨씬 강력하다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새로운 운동을 배울 때도, 축구로 예를 들면,
코치가 "잘했어!" 라고 해 주면 신이 나서 더 열심히 공을 찬다.
그런데 발은 생각대로 움직여 주질 않는다.
마음가짐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임하는 태도인데 패스 수준은 군대스리가 수준.
코치의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잘했어!"
연습 경기에서 10 대 0이라는 멋진 스코어로 패배했다. 그런데도 코치는 "잘했어!"
잘한 것도 없는데 잘했다고 하는 것만큼 짜증나는 것도 없다.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또, 심리학은 아니지만 한도초과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예시를 들자면,
잠을 잘 때 락 음악과 자연의 소리를 담은 녹음 테이프, 둘 중 하나를 듣는다면 무얼 선택하겠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시끄러운 락보다는 자연의 소리로 힐링하며 잠에 들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락 음악을 들었을 때 잠을 더 빨리 잘 수 있다고 한다.
락의 빠르고 단순한 드럼 비트가 반복적으로 들리기 때문에 귀가 쉽게 피로해 져서 잠이 더 잘 온다고.
그에 비해 자연의 소리는 규칙적이지 않고 산발적이기 때문에 신경이 쓰여 쉽게 잠을 잘 수 없다 한다.


사랑을 이론으로만 배운 필자지만,
하루에 한 개씩 선물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진심을 담아 한 번 선물하는 꽃반지 하나가 더욱 감동을 피워내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