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의 풋풋한 사랑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어린이가 ㅡ초등학생 저학년 이하 정도ㅡ 어떤 아이를 좋아하게 되면, 아직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투른데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고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반동 형성>이 작동한다.
반동 형성은 불편한 감정과 생각을 반대로 표현한다.
필자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례이기에, 누구나 타자연습하며 한 번쯤은 봤을법한 김유정의 '동백꽃' 을 예시로 들겠다.
작중 '점순이' 는 주인공을 짝사랑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닌 척 한다.
오히려 주인공을 향한 좋아하는 마음이, 겉으로 드러날 때는 싫어하는 감정으로 바뀌어 나타나 고의적으로 주인공의 닭과 자신의 닭을 싸움붙이는 등의 괴롭힘으로 나타난다.
또, 못 생기고 허약한 사람이, 잘 생긴 척을 하고 센 척을 하며 자랑하고 다니는 것도 반동 형성의 사례다.
자신은 못난 존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방어 기제가 작용하여 왕자병, 공주병에 걸리게 만든 다는 것이다.
주지화
주지화는, 마음이 감당할 수 없을만큼 불행하거나 충격적인 일이 닥쳤을 때 일어난다.
자신에게 닥친 일을 학문적으로 분석하여,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이 넘어가게 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사랑이란 "페로몬,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및 세로토닌 등의 호르몬이 분비되어 쾌락중추를 자극하고, 이로 인해 심박수의 증가와 식욕과 수면욕의 감퇴 및 강한 흥분 상태 등을 경험하게 되는것" 이고,
쉽게 말해서, "여자를 사랑한다" 라는 것은
"보이지도 않는 단백질 덩어리의 자극으로, 염색체 하나 밖에 차이나지 않는 인간에게 강하게 이끌리는 것" 에 불과하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인데, 이런 말초적이고 본능적인 이끌림에 의해 본분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필자가 여자를 '안' 사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 있는 것이니, 절대 오해하지 말자.
지금까지 살펴 본 방어기제들은 대체적으로 '부정적' 인 것들이었다.
방어 기제가 원하는 대로 작동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자신한테 피해를 주거나, 남한테 피해를 주기에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미국 하버드대 정신의학자 '베일런트' 는 '건강한' 방어 기제를 제시했다.
그럼 지금부터는 '건강한' 방어 기제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파.괘.한.다.)
승화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대상에게로 그대로 표출한다면, 자칫 잘못하다가는 콩밥 매니아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증오심과 분노를 속으로 억누르게 되면 일이 더욱 커질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승화> 가 개시된다.
승화란, 욕구나 충동, 증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한도 내에서 다른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스트레스 푸는 것이다.
승화의 사례로는 주먹질을 하고 싶은 사람이 격투기 선수가 되거나, 칼질을 하고 싶은 사람이 정육점 주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승화의 대표적인 사례에는 '게임' 이 빠질 수 없다.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눈빛과 부정적인 눈초리가 대립하고 있긴 하지만, 필자는 그래도 아직은 긍정의 편에 서고 싶다.
반대편에서는 '게임이 폭력성을 부추겨서 사회적인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 라고 주장하지만, 그 폭력성을 해소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더 각박해지고, 정이 사라지고,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분노도, 증오도, 남을 싫어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과 그것들을 분출하고 싶은 욕구를 승화시킨다는 것이 게임의 가장 큰 이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일 게임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분노와 충동을 이기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주먹질과 칼질을 하는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유머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싶다.
<유머>. 그게 끝이다. 불편하고 난처한 상황을 유머로써 매끄럽게 넘기는 것이다.
하지만 "농담" 과는 구별해야 한다.
농담은 단순히 웃기기 위해 던지는 거라면, 유머는 부정적인 상황을 넘기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 기제' 다.
블랙 코미디가 성행하는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다.
세상이 정말 살기 좋고 부족함 없는 천국같은 곳이라면 블랙 코미디가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블랙 코미디는 살기 힘들고, 괴롭고, 지치는 세상이기에 이를 풍자해서라도 웃어 넘기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유대인들이 고난과 역경의 역사에서도 지금까지 버텨온 것도 '유머' 의 힘이라고 한다.
우리 민족도 비슷하다.
탐관오리의 착취, 신분제도의 압박 등의 힘든 시간 속에서도 이겨내고 꿋꿋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데는 탈춤, 서민 문학과 같은 풍자와 해학이 크게 한 몫 해 오지 않았는가?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재치있게 넘겨보자. 웃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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