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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족함의 미학, 자이가르니크 효과 @차지훈



이번 포스팅에서는 필자의 이야기를 '조금' 털어놓고자 한다.
여태까지의 글은 온갖 드립과 전문 용어로 난무했다면, 이 글만큼은 조금 차분하고 잔잔하게 써 보려 한다.
'니 이야기 같은 거 관심없으니까 하던대로 해!' 라고 생각하신 분들, 가끔씩은 휴식도 필요한 법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괜시리 진지먹은데다 오그라드는 글을 보기 싫으신 분들은 조용히 스크롤을 내리시면 되겠다. (그렇다고 닫기 버튼은 누르지 말자, 필자 마음에 스크래치 생긴다.)

왜 갑자기 이런 글을 쓰는지 묻는다면,
첫째, 새벽 빗소리에 감수성이 급 증가해서일 것이고,
둘째, 이번 주제에는 전문적인 지식이나 사례가 필요치 않아서일 것이고,
마지막,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건 아마 소재가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꿈' 을 참 좋아했다.
희망이나 비전같은 꿈도 좋아하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건 잠잘 때 나타나는 '꿈' 이다.

꿈은 항상 중간부터 불쑥 튀어나온다. 마치 당연히 자기가 있어야할 자리인 양, 너무도 자연스럽게 편안한 내 잠 한가운데에 눌러 앉는다.
그러고는 뭔가 알 수 없는 사건들로 머릿속을 헤집어놓더니, 아무 말도 없이 또 불쑥 사라진다.
일을 벌여놨으면 치우고 가야지. 꿈이란 놈은 버르장머리 없는 놈인게 분명하다.

운석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필자를 벌벌 떠는 상태로 버스 안에 가둬놓은 채 꿈을 끝내는가 하면,
평생 한 번 올까말까한 여자 손을 잡을 기회에서, 손끝이 닿기 바로 직전에 알람 소리가 들리는 경우도 있고,
정말 사람 좋은 형과 친해져서 축구 시합을 시작한 순간 햇빛이 눈을 때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렇게 보니, 꿈을 예고편 영화관이라고 부르고 싶다.
항상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도중에 시작해서, 클라이막스에 다다랐을 때 끝을 낸다.

그런 미완성인 꿈들을 꾼 날이면, 짜증나면서 한편으로는 하루종일, 혹은 더 길게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그 꿈에 대한 잔상이 눈앞에 아른거려, 좀처럼 다른 일을 하기 힘든 날도 있었다.

(꿈속에서도 안생겨요)


'아련함' 이었다.
필자에게 있어서의 꿈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꿈의 그 '아련함' 은 필자가 '꿈' 이라는 세계를 좋아하게 된 이유고, 정신분석학, 나아가 심리학이라는 바다에 발을 담그게 해 준 고마움이며,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게 해 준 발판이다.

꿈은 짖궃게도 결말 직전에 끝이 나지만, 만약 꿈이 모든 이야기를 정리하고 하나같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지금 이 자리의 필자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꿈은 미완성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고, 그렇기에 더욱 기억에 잘 남는 것이다.

(블루마 자이가르니크. 솔직히 이름만 듣고 남자인줄 알았다. 쏘리.)


여기까지 읽느라 수고 많았다. 이제 오그라든 손발을 펴도 좋다.
앞서 필자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단지 하나의 심리학 용어를 나름 감성적으로 풀어내기 위함이었다.

'미완성인 과제를 완성된 과제보다 더 잘 기억한다' 라는 <자이가르니크 효과> 에 대해서 말이다.

러시아의 심리학자인 블루마 자이가르니크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붙인 용어다. 흔히 '자이가르니크 증후군' 으로 잘 알려져있는데, '증후군' 으로 불릴만큼 병적인 현상은 아니다.

사실 이 현상에 대해서는 다른 용어들처럼 구태여 많은 해설이 필요하진 않다.
저 한 문장만 읽어도 딱 감이 오지 않는가? 공감도 쉽게 되고?

아님 말고. 그럴 줄 알고 사례를 더 준비해 놨다.

위 사진의 버스 광고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봤는데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고 해야될 것이다.
광고라고 하기도 뭐할 정도로 너무나도 심플하다. 달랑 세 글자 적어놓고 광고라니, 광고비가 아깝다는 생각도 들 법하다.

하지만 이 한의원 (처음엔 한의원 광고인지도 몰랐다) 은 이 광고 하나로 '대박' 을 터뜨렸다.
무슨 제품을 광고하는 지도 모르겠는 이 광고의 힘은 다름아닌 '자이가르니크 효과' 다.

만약 저 약 광고를 아주 구체적인 설명과 함께 한의원 전화번호까지 적어놓았더라면 아마 지금만큼의 성과를 올리지는 못 했을 것이다.
광고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해 보이는 '미완성' 의 광고가 오히려 인상적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새겨져 엄청난 광고 효과를 본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하여 (특히 자이가르니크 효과로) 사람들이 스스로 광고 물품을 찾아보게 만드는 광고를 '티저 광고' 라고 한다.

짝사랑도 자이가르니크 효과의 한 사례라고 한다.
짝사랑은 한 쪽만이 사랑하는 '미완성' 의 사랑이기 때문에 더욱 상대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고백이라도 해서 차이기라도 하면 그 상태로 상황이 종결되기 때문에 아쉬움이 없지만, 고백도 못해보고 끝이 나면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상대방과의 관계가 끝나기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다.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필자는 너무 완벽을 추구한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는 구상만 하다가 한 시간이 지나간 적도 허다했고, 지금도 포스팅을 쓰거나 다른 글들을 쓸 때면 계획과 구상만 몇 시간씩 하다가 시간을 허비하곤 했다.

그렇게 19년을 살아오며 이제서야, 이제서야 너무 늦게 내린 결론.

완벽한 것만이 꼭 완벽한 것은 아니다.
실수해도 되고, 부족해도 되고, 실패해도 되니까, 일단 하고 보자.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필자 스스로도 어지간히 이런 완벽주의가 싫었나 보다.
미완성의 모순투성이인 꿈을 나도 모르게 동경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