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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DreamSymphony 기획, 1탄-집단의 두 얼굴 @차지훈


축구 경기를 팬

으로서 직접 보러 간 적이 있는가?

축구 경기가 아니어도 좋다. 야구나, 농구나, 핸드볼, 하다 못해 E-Sports 라도 팬 중의 한 사람으로 뜨거운 열기 속에서 팀을 응원해 본 적이 있는가?

2002년 월드컵을 떠올려 보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골 하나에 웃고, 오프사이드 하나에 울었다.
특히 우리 선수가 골을 넣고, 16강, 8강, 4강 진출이 확정되었을 때는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옆에 있으면 부둥켜 안고 기쁨을 나누었다.

흔히 '더비 매치' 라 불리는 축구에서의 라이벌전에서는 반대의 상황을 볼 수 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내 최고 더비 매치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
승부의 열기에 흠뻑 빠진 팬들은 상대 팬들을 서로 조롱하고 야유한다.
경기가 끝나고 지하철 역에서 마주친 맨유 팬과 맨시티 팬.
경기장 안에서는 그렇게 비난하고 야유하던 두팀의 팬인데 단둘이 마주치니 아무말도 못하고 머쓱하게 서있다.

'팬' 이라는 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은 혼자 있을 때보다 용감해지고, 과감해지며 때로는 평소라면 절대 못 할 비난도 마음껏 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 껴안을 수 있는 것도, 라이벌전에서 상대편에게 야유하는 것도 집단이 주는 <소속감>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소속감은 간단히 말해서, 특정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얻는 편안함, 안정감, 응집력 등을 일컫는다.


<집단> 이란 기본적으로 '공동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구성원 사이에 상호작용(interaction)을 하며,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이해를 함께 나누는 조직체를 말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어떠한 집단에 소속되고, 정의(definition) 되고 싶은 본능적 욕구가 있다.
선사시대 때 외부로부터의 안전을 위해 개인이 모여서 씨족을 형성하고, 그 씨족들이 모여서 부족이 되고 나라가 된 것을 보면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런데 '정의되고 싶은 욕구' 라니?
한 때 싸이월드를 뜨겁게 달궜던 컨텐츠 중 하나가 이를 설명해 준다.
'백문백답' 이라고 하는 것인데, 100개, 혹은 그 이상의 질문을 나열해 놓고 거기에 답을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등등, 자신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분석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 모두가 야구 얘기를 신나게 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그 이야기에 끼고 싶어서라도 야구에 대한 흥미를 가질 것이고, 또 좋아하는 (정확히 말하면 '좋아해야 하는') 팀을 선택하고 팬이 되리라 다짐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집단에의 소속 욕구와 정의되고 싶은 욕구를 모두 보여주는 경우로, 필자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집단은 끈끈하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이라는 구호를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군인, 그 중에서도 해병대는 유독 끈끈한 정을 보여준다.
일단 해병대만 나오면 10년이 됐든, 20년이 됐든 모두 해병대 출신이라는 집단의 이름하에 똘똘 뭉친다.
가끔 해병대의 그런 모습이 너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그만큼 집단 내의 결속력이 대단하다는 걸 모두가 인정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집단은 갈등을 해결한다.

반에서 도난사건이 생기고 급기야 학급 내에서 여러 파로 갈려 반 분위기가 아무리 안 좋더라도,
반 대항전 축구를 하게 되면 모두가 말 그대로 '위아더 월드'
도난사건이고 나발이고 이겨야 된다는 의지로 인해 학교 운동장에서 바르셀로나의 플레이를 볼 수도 있겠다.

북한도 이러한 점을 잘 이용한다.
아프리카 빈민국 수준으로 열악한 북한의 현재 상황.
굶어죽어가는 사람이 하루에도 쏟아져 나오고, 돈도 없고 쌀도 없다.
이러다가 쿠데타라도 한 번 일어나면 국가가 엎어지는 건 순식간임이 분명하다.
때문에 핵무기를 만들고 남한에 도발을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을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외국에게는 내부적으로 아무 문제 없는 척, 북한 주민들에게는 지금은 굉장히 급박하고 중대한 상황이라 내부의 일은 신경쓰지 말고 대외 관계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 배고프면 배고플 수록, 소위 말해 '입을 터는 것' 이다.

이처럼 집단과 집단 사이의 갈등은 집단 내부의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집단은 똑똑하다.

<크라우드 소싱> 이라는 말이 있다.
Crowd (군중) + Outsourcing(외부자원활용) 의 합성어로 제품이나 서비스의 개발 단계에 외부인, 즉 외부 전문가 혹은 일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크라우드 소싱의 장점은, 대중들이 직접 개발 단계에 참여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고, 때로는 생각치 못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모두가 잘 아는 '위키피디아' 가 있다.
위키피디아의 관리자가 하는 일이라곤 시스템 오류를 잡거나 질문을 받아주는 일 정도다.
사전의 내용은 100% 일반인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지금 당장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추가, 수정, 삭제할 수도 있다. (물론 사실만을 기록, 수정해야겠지만 말이다)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거라 엉망이 될 거라 생각한 사람도 많았지만, 위키피디아는 현존하는 인터넷 사전 중 정보가 가장 풍부하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곳곳에 있는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정보를 입력하여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히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비교적 풍부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

위키피디아의 사례처럼, 집단이 뭉치면 뭉칠 수록 더 많고 좋은 정보를 생산해 낼 수 있다는 효과를 통틀어 <집단 지성> 이라고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이렇게 좋아보이는 집단에도 문제는 있다.

1961년 4월 17일 새벽, 8척의 상륙정이 쿠바 남부의 해안, 피그만으로 접근 중이었다.
상륙정에 탄 1400명은 쿠바의 독재자인 피델 카스트로에 반대하는 쿠바 난민들이었다.
이들은 미국의 후원을 받아 무장봉기를 하고, 피그만 지역을 확보하면 미군이 쿠바군을 공습하여 무력화시키고 이것이 곧 쿠바 대중의 전면봉기를 유도하여 카스트로를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불행하게도 작전의 거의 모든 부분이 실패했다.
상륙정은 좌초됐고, 침공사실은 카스트로의 귀에 바로 들어갔으며 미군의 공격은 날이 밝아 취소됐다.
오히려 미군은 카스트로군의 공격으로 1200명의 사상자와 포로들이 생겨나 몸값을 지불해야 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세운 사람들은 케네디 대통령, 장관들, CIA 국장 및 부국장 등 '엘리트' 들이었다.
한 명도 아닌 여러 명, 즉 엘리트 '집단' 들이 밤을 새가며 세운 작전의 결과는 허름하기 그지 없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챌린저 호 폭발 등이 위 사례처럼 '엘리트' 들의 결정에 따른 참사였다.

크라우드 소싱이니, 집단은 강하다느니 해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애매하게도 그런 경우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
<집단 사고>  응집력이 강한 집단들의 사람들이 만장일치를 얻기 위해 대안의 현실적인 평가를 억압하는 현상을 말한다.
위에서 말한 <집단 지성> 과는 정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집단 사고> 는 그 구성원들이 똑똑하면 똑똑할 수록, 지위가 높으면 높을 수록 더 잘 일어난다.
반대 의견은 무시하고, 오로지 한 가지 대안으로 일치시키기 위한 무언의 압력이 존재하는것이다.
이 압력은 정신능력, 현실검증능력, 도덕판단능력들을 저하시켜 엉뚱한 결론을 도출하게 만든다.
회사 점심식사 때,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시키라던 부장이 짜장면을 시키는 압박과 비슷하다.

그리고 삼풍백화점 사고에서는 윗층의 과도한 무게를, 성수대교 붕괴에서는 다리의 부실공사 사실을, 챌린저호 폭발에서는 고무패킹의 결여를, 엘리트 집단들은 수용하지 않았다.
만장일치로 승인된 결론에 반하는 증거나 의견들은 집단의 의사결정에 방해가 되므로 무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제 사례들인 것이다.


집단에 속해 있든, 그렇지 않든,
당신은 당신 자신의 색깔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게 설사 남들과 다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