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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학평론]안톤 체호프'귀여운 여인'-허상을 실체로 가진 이의 비련 @이승민


빛이 대상을 조명하면 이는 필연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그 그림자는 피사체(被射體)의 개관을 그대로 본뜬다. 그렇기에 그림자는 피사체에 절대적으로 귀속될 수 밖에 없으며 피사체의 부재는 곧 그림자의 부재를 의미한다. 또한 그림자의 형체는 세부적 묘사 없는 모사이며 본질적 실체 없는 허상일 뿐, 이로부터 의미를 찾아내려는 일을 무의미한 짓이다


안톤 체호프의 저서 '귀여운 여인'의 올렌까는 그런, 그림자에 가까운 여인이라 부를 수 있다. 그녀는 오직 타인에게 사랑이란 조광이 비춰질 때에만 그림자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녀의 사고, 그녀의 행동, 그녀의 모습은 모두 사랑하는 이에 대한 모사이다. 그녀는 일평생 타인에게 자발적으로 귀속된 삶을 살아왔고,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주체적 행위는 단지 사랑할 대상을 찾아 선택하는 것 뿐이다. 타인에게서부터 비롯되는 관성만이 타성에 젖은 그녀를 움직이기에, 한 번도 내생적 동인(動因)을 가져보지 못한 그녀는 존재하기 위하여 사랑할 대상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은 언제나 비련(悲戀)으로 끝나게 되며 애절한 미망인은 다시금 사랑을 찾는다. 그리고 종내 선택하게 되는 사랑은 생면부지 중학생에 대한 내리사랑. 평생을 누군가의 '애인'이란 그림자로, '아내'란 그림자로서 살아온 올렌까는 여타 뭇 여인들과 같이 '어머니'란 그림자로서 자신의 말로를 걷게 된다. 다만, 젊어서의 삶의 결실으로 어머니란 지위를 성취한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올렌까는 어머니란 역할마저 자신의 존재를 위해 만들어낸 그림자이자 허상이었다는 차이를 보인다.


그녀는 '아름다운 여인'이 아닌 '귀여운 여인'이다. 미숙한 행동을 보이는 예닐곱 살 안팎의 아동들을 '귀엽다'라고 형언하는 용례를 보아 귀여움이란 매력은 타인에게 부성애나 모성애 따위를 야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올렌까가 발산하는 귀여움이란 매력으로 인해 그녀는 어려서부터 타인의 사랑과 보호를 과분히 받았을 테며 이는 그녀의 자립심 형성에 애로가 되었다. 결국 올렌까는 유아기적 매력에서 탈피한 주체적 아름다움을 갖지 못하였기에 자신만의 형태를 형상화하지 못 하고 평생을 유아와 같이 누군가의 그림자로서 살아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