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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과념을 내려두며 @이승민


  먼저, 2012년 9월 2일 월요일에 기술하였던 자성록의 일부를 발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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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예술과 자의식의 상관관계'에 대한 글을 보았었다. 내용인즉, 자의식이 과한 이들은 말이라는 그릇에 이를 모두 담아내지 못 하여 예술 (음악, 미술, 문학 등 그 형식을 망라한)이란 외적 그릇에 과잉 된 자의식을 담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를 성찰하기 위해 집필하기 시작한 자성록이란 그릇을 투명한 유리그릇이라 여겨왔다. 나의 과오를 성찰하여 다신 같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하여 썼던 자성록에서조차 이를 읽을 내가 아닌 누군가를 의식하며 내 본연의 모습을 전부 담지 못하였다. 수 없이 많은 눈이 이 그릇을 주시하고 있단 가정하에 펜을 들었기에 내가 기술한 자성록은 본디 취지인 '성찰'의 역할을 잃은 위식적인 글자의 나열일 뿐이었다. 때문에, 앞으로의 자성록은 불투명 스테인리스 밀폐용기로 대체할 것이다. 독자가 필자와 일대일대응하기에 타인의 시선에 구애 받지 않고 더러운 글을 쓸 것이다. 이 '더러움'은 문체적, 구성적 더러움 또한 포함하나, 이보다 더 중시 할 것은 현실과 본성에서 비롯 되는 더러움이다. 흔히 이성이라 함은 인간 고유의 것이며 그 자체로 순결하고 고급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상반된다 여겨지는 본능은 금수 또한 갖고 있는 불결하고 저급한 것이라 인식 된다. 그런데 내 성찰의 지표는 이러한 더러운 것을 깨끗한 것으로 도야시키는 데에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이러한 실정에 실로 고쳐져야 하고 바뀌어야 하는 본능적인 것에 대한 기재가 결여되어 있으면 이를 두고 내허외식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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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기 된 글에서 드러나듯, 언젠가는 나 혼자 반추 해 보며 성찰하기 위해 기술 한 자성록에마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부담스러워했던 적이 있다. 하물며 타인에게 보이는 글은 어떠할까. A4용지 세 장 분량의 글마저 수십번의 퇴고를 거쳐 순집필 시간 대여섯시간을 투자하여야 하나의 글로 탈고 된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이런 각고의 노력을 다 한 글이 되려 생각 없이 휘갈겨 쓴 초고보다 얼개가 엉성하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괴작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항상 완벽이란 이데아를 실현코자하니 현실과의 괴리는 더욱 증대 된다. 휴흠 없는, 흠결 없는, 결점 없는 존재가 그 어디에 있으랴. 아는 바 박하고 경험 한 바 벽하기에 조악 할 수 밖에 없는 나의 글. 필력의 증진은 소걸음이나 기대의 상승은 언제나 이를 상회한다. 결국, 자존의 문제이다. 일진월보하여 필경 높음에 이르를 수 있다는 '자신'은 필수불가결하나 스스로의 층위 그 이상으로 자평하게 하는 '자존'은 종내 자멸과 직결된다. 

  존 키츠는 말하였다.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완성한 시를 아침해를 바라보며 불태워 버려도 좋다.' 그는 글이란 수단을 감정과 사유를 정리하는 매개로 보았다. 나 또한 내일 당장 지워버릴 글이라도, 지우고 싶은 글일지라도, 한 획 씩 그어가며 과적 된 사념을 덜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