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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학평론]샤를 루이 필립'알리스'-알을 깨지 못해 아사한 새에 대하여 @이승민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헤르만헤세의 장편소설 데미안에서 발췌한 문구이다. 알이란,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비롯되는 혹한과 혹서, 태풍과 낙뢰로부터 새를 보호하는 일종의 완충재이다. 새는 이 안에서 절대적인 안정감을 느낀다. 둥지의 외연에 도사리는 온갖 위협을 괄시할 수 있을 때가 바로 이 알 안에 존재하고 있을 때이다. 그러나, 필경 알 속의 난백(卵白)은 고갈되고 새의 몸집은 비대해져 새는 알이란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어머니는 만인의 알이다. 그 누구도 어머니란 알이 없이는 존재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머니의 보호는 자식의 자립을 위하여 존재한다. 자립하지 못하면 알의 존재 의미는 퇴색된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 자신에 가해질 수 많은 위해에 출사표를 던지는 것과 다름 없지만, 거의 모든 새들은 결국 알을 깨고 자립한다. 임갈굴정(臨渴掘井), 상기했듯 새가 커가면서 난백으로부터 얻는 양분은 줄어들고 알의 크기는 제 몸집보다 너무나 작다. , 어머니에게서 배울 수 있는 지식은 한정되어 있고, 어머니의 보호는 되려 굴레처럼 느껴진다. 이제, 자유를 얻기 위해서, 저 높은 창공으로 비상키 위해서 어린 새는 그만큼의 위험과 의무를 부담하고 알을 깨고 자립한다.


그리고, 알리스는 알을 깨지 못해 아사(餓死)한 새이다. 난각 속 양분은 고갈되었는데 이를 자각지 못한 무감한 새이다. 자연히 느껴야 할 앎에 대한 갈구, 자유에 대한 갈망이 피어나질 않았다. 이는 아마 그 알이란 것이 깨기엔 너무 포근하고 단단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알리스의 어머니는 사 년간 세 아이를 잃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리스는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도 사랑 받을 수 있었을 것이며, 어머니는 알리스의 생존을 위해 필사적 보호를 다 했을 것이다. 때문에 알을 깨고 나가기엔 그 알이 너무나 따뜻했거니와 깨고 나가려고 시도를 하더라도 도저히 깰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알리스의 죽음을 보고 알리스의 시기와 질투만을 탓 할 순 없다. 이 시기와 질투는, 자신을 향하던 한량 없는 사랑이 자신의 동생을 향해가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발한, 자연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알을 깨기 위해선 새 스스로의 노력뿐만 아니라 그 알의 형질 또한 중요하다. 너무 무르고 차서도 안 되고, 너무 굳고 따뜻해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