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해가 하늘을 빛으로 덮기도 전인 시간인 새벽 5시, 알람소리가 인사불성인 나에게 돌연히 울리기 시작하였다. 3분 간격으로 맞춰져 있던 10개의 알람 중 깊은 잠에서 나를 끄집어내는 데에는 오직 3개의 알람만이 필요하였다. 아직 머릿속 운영체제가 완전히 부팅되기 전 나는 무엇이 이런 이른 아침(이라기 보단 늦은 밤)에 나를 깨웠는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잠이라는 짙은 운무 속에서 하나의 단어가 걸어 나왔다. ‘중국여행’. 이 단어는 아직 반쯤 자고 있는 내 대뇌에 조급함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였고, 전례 없는 속도로 씻고 짐을 꾸린 나는 폭우와 어둠을 헤쳐 공항으로 향하는 대형버스에 승합하였다.
한국 시간 1시 20분, 잠결이긴 했지만 랜딩기어 내리는 소리와 잠시 후 상해 푸동 국제공항에 착륙한다는 기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상해 시간 12시 30분,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기억 나지 않는 기내식이 위장에서 요동을 치기에 눈을 떴다. 어느새 나는 이국 땅 위에 딛고 서있는 것이었다.
첫째 날, 첫 번째 목적지는 ‘서당’이었다. 영화 미션임파서블3의 촬영지로서 유명한 이 곳은 근대문물이 유입되기 직전에 시간이 멈춘 듯 ‘중국’ 그 자체의 모습으로서 형언될 수 있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듯하다. 그러나 하필 이 날은 중국 공휴일이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보았던 한적하고 여유로운 느낌은 국적, 성별, 연령을 불문한 인파 속에 묻혀버렸고 당시 양장구곡과 같은 길에서의 관광은 어느새 탈출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당을 겨우 ‘탈출’한 나는 한정식으로 차려진 식사를 하고 차내에서 중국거리를 관광한 뒤 성황각에 올라 다음날 가게 될 ‘서호’와 항주의 야경을 본 뒤 하루간 묵게 될 호텔로 향하였다.
다음날, 3시간이라는 짧은 단잠에서 깨어나 조식을 먹기 위해 1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이 날 조식은 호텔뷔페식. 반도의 뷔페식을 생각하며 대륙의 뷔페식을 기대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Orange juice’라고 적힌 용기에선 오랜지 향이 나는 미지근한 물이 나왔고, 모든 테이블을 다 돌았음에도 거의 비어있는 그릇이 음식에 대한 내 일말의 기대마저 그릇되었음을 알려주었다.
각설하고, 둘째 날 ‘대륙스럽게’ 커다란 버스가 향한 곳은 전날 성황각에 올라 보았던 ‘서호’이다. 중국에서도 발군의 명승지라는 서호에서의 유람은 전날 서당에서 느꼈던 난잡함을 씻어 주기에 충분하였고 중식으로 먹게 된 동파육과 거지닭 또한 전날 먹었던 ‘조미료 국’과 채소만으로 도배된 상차림을 잊게 해 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이 다음 일정은 송성테마파크였는데, 축조가 덜 된 듯 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른 시기에 개장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 곳에서 상연하는 ‘송성가무쇼’가 상기 테마파크의 백미였던 것이었다. 3000석이라는 엄청난 객석 수와 천장이 갈라져 물이 쏟아지고 화약이 터지는 등의 연출은 이의 명성이 절대 거짓됨이 아님을 보여주는 듯하였다. 이렇게 항주에서의 관광이 끝나고 상해로 돌아가 유람선에 탑승하여 아름다운 야경을 본 뒤 노곤한 몸을 이끌고 호텔에 투숙하러 발을 옮겼다.
사실상 관광의 마지막 날인 셋째 날, 가장 먼저 들리게 된 곳은 상해 신천지이다. 새로운 세상이라 이름 붙인 이 곳의 모습은 어느 TV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유럽의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양옥과 영어가 즐비한 이 곳 신천지의 모습은 19세기 당시 국제적 무역항으로 거듭났던 상해의 발전 모습을 알게 해주었다. 그런데, 신천지가 이번 여행의 관광지로 편입된 데에는 이러한 유럽풍 가옥과 달착지근한 커피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이 신천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다. 처음 가이드의 인솔에 따라 어느 골목에 들어섰을 때 차마 그 곳이 한 국가의 임시정부가 있었다는 것을 연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규모는 작고 초라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모습 때문에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국의 주권을 찾기 위하여 힘쓴 독립운동지사들의 노고가 더 여실히 드러났으며 그들의 노력을 한 번 더 치하하게 되었다. 이후 사방가 시장에 들리게 되었는데, 시장기로 인해 이 곳 KFC에 들어갔다가 의사소통의 불능과 끝 없는 새치기로 곤혹을 겪으며 다시금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바로 중국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이 곳 사방가 시장에서 12만원짜리 이어폰을 1만2천원에 파는 것을 보고 현혹당하여 구매하였으나, 채 3시간이 가지 못하여 명을 달리하였다.) 수 없이 많은 모조품, 수 없이 많은 인파들을 헤치며 거리를 빠져 나온 뒤 근섬유 사이마다 서린 피로를 안고선 무거운 대형버스와 이보다 더 무거운 눈꺼풀에 몸을 맡기니 호텔에 도착해있었다. 그리곤, 달빛이 차오르는 밤하늘을 보며 상해의 마지막 밤은 깊어갔다.
신토불이라고 하였던가? 물론 우리나라를 잣대로써 일이관지하며 타문화를 논하는 태도는 옳지 않음을 알고는 있으나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외적으로 보았을 때, 항주에 1억 이상의 사재를 지닌 갑부가 우리나라 인구수만큼 산다고 하지만 빈부의 간극이 심한지 메트로폴리스와 비야(鄙野)의 모습이 공존하였고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느낌의 한국 구조물과 달리 원색을 강조하고 날렵한 모습의 현지 건물은 당장의 웅장함을 줄진 몰라도 이 웅장함 뒤에는 이보다 더 큰 권태와 부담만이 남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프랑스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한국의 개고기 문화에 대하여 맹목적 비난을 했던 것처럼 중국의 국격을 깎아 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습관화와 적응이란 인간 본연의 기능으로 어떠한 문화에 귀속된 인간의 내면은 쉬이 바뀌지 않고, 나날이 옅어지는 국경은 우리로 하여금 포용력과 수용력을 요구함을 역설하고 싶은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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