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아아아아…’ 중력에 몸을 싣고 지상으로 닫는 빗소리만이 아직 볕조차 들지 못한 좁다란 방을 채운 우울한 아침. 한 차례 단말마와 같은 짧은 뇌성이 방 안의 적막을 잠시 헤쳐놓고, 다시 기나긴 우성에 내 오감 모두 잠겨 수마의 손에 이끌려 갈 때 알람이 울렸다.
틀림없이 오늘은 시간의 누수 없이 하루를 보내고자 평소보다 한 시간 앞당겨 맞춘 알람이나 막상 이불을 걷고 일어나보니 불현듯 의구심이 엄습하였다. ‘과연 이런 이른 시간에 일어난다 하여도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한 나에 대한 맹신도 고개를 들었다. ‘딱 10분, 10분만 이불 속에 몸을 묻자. 오히려 잠 깨는 데에 도움이 될 지 어찌 아는가?’. 물론, 알람을 끄고 다시금 눈을 떴을 땐 되려 평소보다 더 늦은 시간, 피로를 떨쳐내긴커녕 잠에 거나하게 취해 인사불성임은 명약관화. 결국 오늘도 계획한 바 이루지 못하였고, 오늘이 지나면 또 다른 오늘이 될 뿐, 차일피일 미루는 내일의 모습은 일모도 보지 못한 채 또 다른 오늘이 되었다.
여전히 창 밖엔 비가 내리고, 나 또한 자괴감의 호우에 빠져 여유라는 단 숨 한 모금 삼키지 못하였다. 나는 어째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가. 이 천성적 해태와 고착된 나태를 언제쯤 털어낼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동안 격년했던 성당을 다시 찾아 고해성사를 드렸다. ‘신부님, 제가 천성이 나태하여 제 의무와 맡은 바 다하지 못하였고 항상 휘발성 결심으로 작심한 바 삼 일도 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그렇게 진지한 답변을 듣고자 간 것은 아니다. 그저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때문에, 아주 진부하고 건조한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부님의 다음 한마디가 내 가슴을 관통하였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세요.’
신부님 왈, ‘과한 자책은 몸에 해롭습니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야 하며, 이로써,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각고의 노력도 불사하듯 스스로를 사랑하는 이만이 변화 할 수 있습니다.’
이에 깊은 통감을 느끼고 진심으로 신부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선 성당 밖을 나섰다. 물론, 나 자신이 하루 아침에 바뀐 것은 아니다. 허나, 불교에서 논하는 ‘돈오점수’, 이와 같이 한번의 큰 깨달음을 얻고 하루하루 습기를 제거함으로써 더 나아질 수 있는 반석이 마련되는 것이다. 나를 구속하는 질곡들을 끊어버리기 위해선 모든 자격지심을 버리고 무괴아심의 상태로 스스로를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 칼럼은 필자가 자성록(자아성찰록)에 기술한 내용을 기반으로 총3부작으로 진행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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