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김영하, 공지영, 신형철 등 대표작 한 권쯤은 읽어 보았을 만한 유명저자들의 책을 수백, 수천 권씩 나열해 놓는다면 각각 누구의 저서인지 당신은 분간 할 수 있을 것인가? 표지와 제목, 저자를 모두 가린 채 오직 종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작가의 문체적 편린을 끼워 맞추며 작가의 실루엣을 만들어 가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이 수 많은 책들 사이에 박민규의 소설이 있다면, 당신은 책장 하나하나에서 고작 한 조각의 편린이 아닌 온전한 은린(銀鱗) 전부를 건져 낼 수 있을 것이다.
박민규의 작법은 꽤나 독특하다. 아니, 독특하다고는 형언이 불가한 그의 작법은 ‘괴이하다’라는 어휘로까지 수식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두 장의 백지를 ‘핑’과 ‘퐁’이란 두 음절만으로 채워 넣기도 하고 난삽하게 삽입되어 있는 쉼표와 도대체 저의를 알 수 없는 문단 분류는 읽는 이의 집중력을 저해시키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체는 독자를 책 밖의 관조적 위치에서 소설 속 화자 그 자체의 위치로 갈등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의 첫째 장을 넘긴 직후에 받았던 이질감과 난해함은 두 장, 세 장 넘어갈수록 당신의 손 끝에서 융해될 것이고, 당신이 감탄고토식의 독서를 하는 이라 하더라도, 박민규의 소설이란 쓰디쓴 달콤함을, 당신은 뱉지 못할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못’과 ‘모아이’이다. 쾅.쾅.쾅. 하고 망치질 세 번이면 벽에 쾅.쾅.쾅.하고 박히는 못과 같이, 못은 왕따의 주동인물인 치수의 망치질에 두개골에 금이 가 언어장애가 생기기도 하였고 버스의 하차벨을 만지작거리듯 인생에서의 하차를 수십 번 생각하기도 하였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처럼 초자연적 표정과 머리크기를 한 모아이 또한 못과 한 쎄트가 되어 매일 같이 왕따를 당한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오늘날의 청소년 왕따 문제를 시사하며 주인공의 성장을 다루는, 그런 학원소설은 아니다. 굳이 주제를 말해보자면 대중에서 괴리된 이들이 말하는 참된 대화에 대한 이야기랄까.
세상엔 세 부류가 있다. 인류의 2%. 세상을 끌고 나가며 여론을 생성하고 대중을 규합하는 역사서의 집필자들이 있고, 이 2%옆에 붙어 그들에게 영합하며 주체성 없이 대중을 따르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못과 모아이, 인류에게서부터 배제되어 핼리혜성이 찾아와 지구에 충돌하기를 바라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 있다. 이러한 인간들은 항상 다수결의 원칙에 의거해 사회로부터 배제된다. 대개의 경우 인류의 2%들이 이들을 배제하는 것이나, 항상 대중은 이들 2%와 의견을 같이하기에 결국 다수가 그들을 배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들이 인류로부터 배제 당하는 이유엔 그리 거창한 것이 없다. 돈이 과분하게 많거나, 숟가락을 구부리는 초능력 따위를 부리거나, 의지가 넘치거나, 성격이 과도하게 과묵하다는 등의 이유가 그 중 일부며 그간 마녀란 이름으로, 빨갱이란 이름으로, 왕따란 이름으로 있어왔다. 어쨌든 왕따라는 호칭의 못과 모아이는 우연히 벌판 위에 서 있는 탁구대를 발견하게 되고 탁구용품점의 주인인 세끄라탱을 만나게 되어 탁구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탁구라켓을 쥐고 난생 처음 의견이란 것을 갖게 된다.
핑-퐁-핑-퐁. 한 어절 한 어절 토스와 리시브를 순서대로 해가며 그들은 무언의 대언을 한다. 항상 인류의 2%들 혹은 대중으로서만 가질 수 있던 의견을 그들은 처음 갖게 된 것이며, 2%들의 압제적이며 일방적인 대화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견을 공정하게, 차례를 지키며, 타인을 배려하며 피력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듯 박민규가 논하는 참된 대화란 '핑퐁'과 같은 대화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 이런 참된 대화란 얼마나 어려운가? 세상을 움직이는 2%라 마땅히 부를만한 정치인들은 대중 앞에 서서 무한히 많은 공을 무한히 많이 서브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이 무한한 공들을 리시브할 라켓이 주어지지 않는다. 되려 날아오는 공들에 가격 당해 다시금 2%의 힘을 느끼고 이 앞에 복종할 뿐이다. 이러한 현실에 박민규가 제시한 해법은 '인류의 언인스톨'. 그의 말처럼 오늘날 많은 애로가 규착되어 고착된 이 현실을 타개할 가장 빠른 방법은 정말 언인스톨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꽤나 과격하고 비현실적인 방법이기에 세상이란 공구함에 들어있는 모든 못들과 이스터섬에 있는 900여개의 모아이 석상들에게 말한다. 라켓이 주어지지 않은 자신의 처지를 통탄하며 핼리혜성을 기다리려고만 하지 말아라. 당신에게 날아오는 공을 전부 쳐내진 못하더라도 하나하나 맨손으로 리시브 하다 보면, 틀림 없이 핼리혜성 같은 공을 서브할 날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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