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생각 @이준형


예전부터 사람들에게 죽음은 모든 두려움의 궁극적인 대상이었다. 천재지변에 대한 두려움, 병에 대한 두려움, 굶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두려움은 결론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이른다. 또한 죽음은 사신(死神) 등의 어두운 이미지로 대변되며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 하나의 이미지를 구축한 채 자리잡았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에는 구체적인 내용이나 근거가 있지는 않다. 막연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를 들여다보는 듯한 심오한 두려움이다. 이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죽음 이후의 비밀, 사후세계에 대해 알아보려 노력했지만 아직까지도 근거 없는 루머 만이 입에서 입으로 떠돌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두려움 중 대부분은 죽음이라는 개념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낸다면(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품고 살아가는 거의 모든 두려움을 해결하고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극복해내지 못하더라도 죽음에 대해 일반적으로 익혀진 어둡고 슬픈 이미지 대신 새로운 생각으로 죽음을 바라본다면 가슴을 짓누르는 다양한 마음의 문제들을 의외로 많이 내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모든 삶에 있어 마지막을 의미한다. 죽음을 새로운 시작으로 생각하거나 후에 환생을 기대한다거나 하는 사람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죽음은 피할 수도 없고 멋대로 늦출 수도 없다. 그렇기에 항상 상기하며 다니지는 않지만 모두가 자신은 결국 죽음이라는 결론에 이른다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짊어진채 삶을 끌어간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에 우리는 무언가를 성취하고, 누리고 싶어하며 그런 종류의 것들을 얻었을 때 만족감을 느낀다.

 

그런데 만약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끝이 없었다면 모두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을까? 끝이 없는 인생에서 우리가 노력해서 무언가를 얻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기껏 얻는 만족이라고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행위를 즐기고 그런 것만을 하려고 할뿐, 지금의 시대를 만들어낸 선조들의 위대한 생각과 행동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뉴턴, 나폴레옹, 아인슈타인, 체 게바라 같은 이들 모두 원시적인 생활 속에서 단발성 쾌락을 쫒으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을테고 우리 또한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저급한 수준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 것이 저급한 삶이라는 것은 인식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죽음이란 것은 인간의 삶을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든다. 또한 죽음이 있기에 사람의 목숨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죽음을 찬양하고 신봉하고자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죽음에 대해서 남들이 해석하고 정의한 이미지만으로 필요 없는 두려움을 스스로 만들어내 새로운 발걸음을 딛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이 글을 썼다. 물론 글 만으로는 자세히 설명하고 이해를 돕기에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더 깊고 다양한 생각은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자기합리화성의 색이 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