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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공동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정여진


 최근 ‘쌍십절 괴담’이 유행한 적 있다. 10월 10일 중국인들이 인육을 먹으러 한국에 들어온다는 괴담으로, 한창 네티즌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던 괴담이었다. 이는 지난 4월 수원에서 발생한 일명 오원춘 사건 이후 ‘오원춘이 인육 매매 세력의 중심에 있었다’는 의구심이 불러일으켜지며 발생하였다. 경찰은 이를 두고 근거없는 소문일 뿐이라 일축했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다. 근거 ‘있는’ 소문이라 보는 것이 맞겠다.

누구나 알고 있듯, 산업화 이후 급속도로 성장한 경제와 함께 핵가족화 현상을 지나 개인주의, 이기주의 사회로 변화하였다. 개인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사회 풍조 때문에 빠른 경제 성장은 있었을지 몰라도 도덕적 해이 현상은 심화되어져만 가고 있다. 당장 나의 일이 아니라면, 쉽게 외면하고 자신의 길만 가는 우리나라 사회. 벌써 수년 전부터 거론되어지고 있었던 문제이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아 문제로 부상했다가도 그 막막함에 다들 입을 다문다.

 

, 과거였더라면 분명히 도덕적으로 그른 일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일들을 개성이라 칭하고 적당히 넘어가는 사회적 풍조 또한 이런 불안감을 조성했다고 볼 수 있다. 짧은 20초짜리 광고에서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폭력성이 짙은 광고를 보여주고 있고, 15세 관람가 영화에서는 쉽게 사람을 죽인다.

 

어째서 개성사회에서 인정되어지는 개성의 폭이 넓어짐으로써 사람들의 도덕성의 범위조차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어지는가? 성장하는 사회에서 후퇴하는 공동체의 시간이라니, 우리는 나이 먹어가는 고령화 사회에서, 어린 공동체의 도덕적 해이 사회를 살고 있다. 괴담에 민감하게 반응하듯 어리석은 사회의 모습도 함께 발견하면 좋겠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앞으로 그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원인을 분석하는 이유도 잘못되었던 원인을 고쳐 다시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한 데에 있다. 어리지만 느리더라도 조금씩, 성장시켜 나간다면 고쳐질 것 같지 않은 이 사회 또한 달라지고 변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자라고 있고, 성장할 여지가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