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한창 ‘한국인이 피곤한 이유’ 라는 신문기사가 나와 많은 사람의 폭소를 자아낸 적 있다. 책 제목 ‘10대, 꿈을 위해 공부에 미쳐라’부터 ‘공부하다 죽어라’ 까지, 공부와 한국인의 필연적 관계가 드러난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만큼 공부에 대한 열기가 전국적으로 불타오르는 시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열기가 불타오르면 불타오를수록, 청소년들은 아파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청소년 자살률이 전국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청소년 행복지수는 제일 낮은 국가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간과하고 있는 사실을 먼저 짚어야 하지 않을까. 어째서 공부하는가? 어떤 청소년이든 이런 질문을 가지지 않은 적은 없을 것이다. 공부를 하는 이유를 여러 가지 제시해줄 수 있지만, 본인이 아닌 그 누구도 이유를 정확히 제시해줄 수는 없다.
학생들은 학창시절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꿈이 무엇인가를 찾아 헤맨다. 하지만 진로를 알맞게 찾는 이는, 그 중 자신에게 꼭 맞는 진로를 선택하게 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열에 다섯 그 이하일 것이다. 꿈을 찾고, 그 다음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분야의 공부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학생들의 일상은 공부 다음 꿈찾기이지, 꿈을 찾은 다음 공부를 하는 학생은 드문 경우이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진로가 확실치 않아 휘청대고, 진로가 확실치 않은 학생은 목적의식이 뚜렷하지 않아 공부를 기피하게 된다.
그렇다면, 마냥 ‘공부하라’ 는 사회의 억압적 풍조를 탓해야 한다? 아니다.
사회가 아무리 학생들에게 학업 능력만을 요구해도, 스스로 바로 서서 먼저 공부하는 이유를 찾아 헤매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은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 삶이기 때문에, 꿈을 기반으로 노력과 공부가 수반되어야 한다. 내 삶이기 때문에, 공부가 수단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자신의 삶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책임져줄 수 없는 귀중한 시간, 단순히 공부를 하는 것은 고통일 뿐이다. 지금 당장의 성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근본이 꿈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좋은 성적에 대한 근거 없는 열망에 기반한 것인지 마음에 손을 얹고 삶의 우선순위를 재점검해야 한다.
그렇게 꿈을 향한 ‘수단으로서의 공부’를 하게 될 때, 비로소 삶의 우선순위가 정립되고 마음의 부담감도 덜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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