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자유’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은 어떨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아마 상대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유에 대해 막연한 동경심을 품고 있다. 그 동경심으로 속세를 벗어나자연에서의 삶을 즐기는 도인과 같은 이들을 보며 그들이 외치는 자유에 감탄한다.
‘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구나, 부럽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그런데 혹시 우리가 자유를 추구하고 갈망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있는가? 왜 우리는 그토록 자유를 열망하고, 동경할까. 게다가 우리는 과연 자유를 갈망해야만 할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자유’의 기준은 굉장히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소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자유로운’ 삶이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고 그 흔치 않은 삶들을 접하며 자신도 모르게 자유의 기준을 높여버린 것이다.
또한 우리가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자유로운’ 이들의 삶을 전하는 매체의 탓 만이 아니다. 매체를 통해 자유의 기준을 높여버린 이들의 흐름이 우리를 자유에 굶주린 사람인 마냥 만들어버린다. 게다가 원래 자신이 어딘가에 속박되었다던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이곳저곳에서 이룰 수도 없는 자유의 기준을 들이대며 “너는 자유롭지 못해!”라고 말해대니 어느새 자신의 감정을 속이며 다른 이들이 높게 쌓아 올린 기준의 자유를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앞서 설명한 ‘흐름에 휩쓸린 자유에 대한 갈망’의 단계에까지 이르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자유갈망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 속 자유에 대한 기준을 가진 삶을 실제로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수 밖에 없다.
흔히들 자타가 자유롭다고 공인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가정을 유지할 최소한의 책임감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타인이 인정할 정도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묶고 있는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종족번식의 본능을 타고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책임감이라도 타고난 이들이라면 그런 과감한 행동은 쉽지 않다.
확실한 것은, 만약 조물주가 있다면 조물주는 소수의 자타공인 자유를 누리고 있는 이들보다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을 의도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후자야말로 조물주가 구축해놓은 세계를 안정적으로 유지시켜나갈 수 있을테니까. 그런 면에서 우리가 동경하는 자유에 관련된 이들은 다르게 보자면 생존의 굴레에서 도태되고 마는 비굴한 패배자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언가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들을 보며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들을 회의하고 비관하며 자책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왜 우리가 남들이 쌓아 올린 기준을 가진 자유를 갈망하며 자신을 자책해야 하는가? 다른 사람들이 말해대는 자유를 갈망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이룰 수 없는 기준을 가진 자유에 대한 갈망은 그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을 더 불만족스럽게 만들 뿐이다. 앞으로 누가 “좀 자유롭게 살아봐라” 따위의 말들을 늘어놓는다면, 시원하게 말해주자.
“제가 왜 그래야만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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